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성 전투 (문단 편집) ==== [[백암산 전투]](제5사단)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백암산 전투 상황도.png|width=100%]]}}} || || 백암산 전투 상황도 || 이 당시 중공군 180사단은 7월 13일 자정이 되기 전까지 3사단과 5사단의 전투지경선이 그어진 금성천이 북한강으로 유입되는 합류지점으로 포위기동 부대들을 투입하여 3사단 후방지역에 위치한 지원부대와 지휘소를 기습하였다. 이 포위공격으로 제3사단의 방어선이 붕괴되기 시작하자 중공군은 그 여세를 몰아 북한강의 천연 하천 장애물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5사단의 좌익 연대인 35연대 소속 1대대 진지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1대대는 좌로부터 제3중대를 금성천 남안에 제2, 9중대를 북한강 남안에 배치시켰고 예비인 1중대를 2중대 직후방에 배치하고 있었다.] 다만 초반에는 중대급 공세만이 있었고 중공군은 3사단쪽으로 집중되어 공격하였으나 새벅 1시가 되면은 중공군의 숫자는 어느새 대대규모로 불어났으며 또 다른 중공군 2개 중대가 동쪽의 2중대를 공격하는등 전투보고가 잇따라 계속 들어왔다. 이때 중공군의 포격량은 완전히 폭발하였고 35연대와 대대간의 교신은 모두 두절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사단은 중공군의 공격계획을 알아내었고 이에 사단은 중공군을 저지하기 위해 5사단 포병을 비롯한 미 제5포병단 소속의 미군포병대대 등 가용한 포병의 전화력을 이곳으로 집중시켰다. 그러나 이런 공격에도 불구하고 중공군은 2시 무렵에 1개 대대규모로 증강되었고 1시간 후에는 또 다른 1개 대대 규모의 중공군이 3중대 전초로 나가있던 1소대 진지를 휩쓸고 계속해서 3중대 진지로 밀어 들어갔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차 싳모.png|width=100%]]}}} || 이와 같이 중공군의 공격이 좌일선 대대에 집중되자 연대장 박창원 대령은 연대 방어책임 지역의 중앙 부근에 솟아 있는 714-780고지 선으로 배치되있는 3대대의 10,11중대를 축차로 1대대 주저항선 후방 689고지-낡은터선으로 진출시켜 이 지역의 방어종심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3대대가 있던 자리에는 2대대에게 언제든지 명령만 있다면 점령하여 방어할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한편 5사단장 김종갑 소장은 중공군이 주력을 금성천 따라 서남쪽으로 진출시키고 무방비 지대인 사단의 좌후방을 우회하여 백암산까지 남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걸 간파한 후 그 대응책 강구에 부심하였다. 그는 오전 6시에 군단장의 승인을 얻어 주파령 4KM 남쪽 어두운골에 대기하고 있는 27연대 2개 대대를 백암산 서측방 계곡으로 이동시켜 35연대의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투입할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이에 따라 27연대는 오전 8시 20분에 목적지에 도착하여 대대별로 산개한뒤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이때 좌전방의 1대대는 1개 연대로 증강된 중공군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462고지를 포기한뒤 1중대의 엄호하에 우측방 9중대와 동서로 연한 해발 700m급 능선으로 이동하여 철수를 개시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